우리가 흔히 ‘개항’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떠올리는 건 1876년이다. 하지만 부산항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1678년, 지금의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에 약 10만 평 규모의 초량왜관이 조성되었다. 조선과 일본이 물자를 나누고 문화를 교환하며 공존하던 이 공간은, 인류학자들이 오늘날의 자유무역지대에 빗댈 만큼 이미 국제 교류의 거점이었다. 말하자면 초량왜관은 오늘날 부산항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부산의 바다는 일본에만 열려 있지도 않았다. 1797년 10월, 용당포 앞바다에 영국 해군의 ‘프린스 윌리엄 헨리호’가 홀연히 나타났다. 항해 중 물자가 떨어진 함장 윌리엄 로버트 브로텀은 낯선 땅에서 도움을 청했고, 부산 사람들은 처음 마주한 이방인에게 식수와 땔감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이 극적인 첫 만남은 브로텀 함장의 항해기와 조선왕조실록 양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공식 개항보다 80년 앞선 이 장면은, 부산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는지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