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간 녀석들이 돌아왔다

부산박물관 테마특별전 〈부산 개항 150년: 바다를 건너간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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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한쪽, 그림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용맹하고 싶은 겁쟁이 호랑이 ‘흥구’와 자존심 강하고 허세 가득한 매 ‘매기’가 150년의 잠에서 깨어난다. 조선 후기 초량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큰 사랑을 받았던 수출화 속 주인공들이다. 그렇게 1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두 녀석이 안내자가 되어 관람객을 데려갈 곳은, 부산 개항 150년의 시간 속이다. 매일 수만 개의 컨테이너가 오가는 세계 2위 환적항 부산. 이 항구도시의 뿌리를 만나게 해주는 부산박물관 테마특별전〈부산 개항 150년: 바다를 건너간 녀석들〉을 찾았다.

왜관에서 열린 바다

우리가 흔히 ‘개항’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떠올리는 건 1876년이다. 하지만 부산항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1678년, 지금의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에 약 10만 평 규모의 초량왜관이 조성되었다. 조선과 일본이 물자를 나누고 문화를 교환하며 공존하던 이 공간은, 인류학자들이 오늘날의 자유무역지대에 빗댈 만큼 이미 국제 교류의 거점이었다. 말하자면 초량왜관은 오늘날 부산항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부산의 바다는 일본에만 열려 있지도 않았다. 1797년 10월, 용당포 앞바다에 영국 해군의 ‘프린스 윌리엄 헨리호’가 홀연히 나타났다. 항해 중 물자가 떨어진 함장 윌리엄 로버트 브로텀은 낯선 땅에서 도움을 청했고, 부산 사람들은 처음 마주한 이방인에게 식수와 땔감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이 극적인 첫 만남은 브로텀 함장의 항해기와 조선왕조실록 양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공식 개항보다 80년 앞선 이 장면은, 부산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개항장 부산, 마주한 신세계

1876년, 일본의 압박 속에 체결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는 부산을 조선 최초의 근대적 개항장으로 만들었다. 작은 어촌 마을이 하루아침에 세계를 마주하는 관문이 된 것이다.

부산항에는 거대한 증기선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일본인과 중국인, 푸른 눈의 서양인들이 부두에서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고, 낯선 언어와 복식이 뒤섞이며 부산만의 혼종 문화가 싹텄다. 외국인들은 이 낯선 항구도시의 풍경을 카메라와 붓으로 기록했다. 그들에게 부산은 이국적이면서도 촌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기념품으로 사간 그림 속에는 부산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개항기 부산의 풍속을 즐겨 그린 화가 기산 김준근의 작품들은 외국인들의 손에 들려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항구는 물자만 오가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과 문화와 이야기가 함께 드나드는 곳이었다.

파도 타고 세계로, 부산항

개항이 곧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 부산항은 수탈의 통로가 되었다. 그러나 부산 사람들은 그 아픔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전쟁기에는 전국에서 밀려든 피란민들을 품으며 임시수도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냈다. 부산항은 그 모든 시간을 함께 버텼다.

1960년대 이후, 부산항은 대한민국 수출 전진 기지이자 경제 성장의 심장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한 박스 한 박스가 쌓여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부산항은 연간 2,000만 TEU가 넘는 화물을 처리하는 세계 2위 환적항으로 동북아시아의 물류 허브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50년 전 호랑이 그림 한 장을 바다 건너 보내던 그 항구가, 이제는 수천만 개의 컨테이너를 세계로 내보내고 있다. 교류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족자 속에서 깨어난 두 녀석

이번 전시의 안내자 흥구와 매기는, 카카오프렌즈 개발자이기도 한 호조(권순호) 작가가 부산 박물관과 손잡고 탄생시킨 캐릭터다. 조선 후기 초량왜관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호랑이 그림과 매 그림을 모티프로 했다.

당시 동래 지역 화가들은 왜관에 머물던 일본 상인과 관리의 주문에 따라 다양한 그림을 제작했다. 매 그림은 일본의 특별 청구가 잇달았던 인기 품목이었고,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았던 일본에서 조선의 호랑이 그림은 신비로움과 용맹함의 상징으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대나무나 소나무를 배경으로, 머리와 꼬리에 표범처럼 점무늬가 새겨진 호랑이 그림들은 근대 개항 이전부터 이미 바다를 건너 조선의 문화를 알린 작품들이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며, 기존의 유물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과 뉴트로 감성을 접목한 몰입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 3시에는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가 직접 안내하는 ‘큐레이터와의 역사 나들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그림 한 장이 바다를 건너던 시절부터, 수천만 개의 컨테이너가 세계를 오가는 오늘까지. 부산항의 유구한 시간은 멈춘 적이 없었다. 그 시간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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